[본 콘텐츠는 다비육종의 기술정보지 '다비퀸 2024년 7월호'의 일부이며 다비육종의 허락 하에 게재합니다. -돼지와사람]
사육환경, 수요와 공급
필자는 맥주를 좋아한다. 맥주를 물처럼 마신다고 해서 친구들이 오줌 만드는 기계라고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나에게 IPVS 참석의 기회가 생겨, 학술적 의미 95%와 5%의 맥주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독일 라이프치히로 출국을 하게 되었다.
독일에 내리자마자 날씨를 온몸으로 체감한 후 든 첫 생각은 “돼지 키우기 좋은 나라인가 보다” 였다. 연 평균 고온과 저온의 차이가 심하지 않으며, 일년 내내 온도가 고른 편이고, 매우 덥거나 매우 추운 환경은 없었다.
반대로 대한민국의 양돈 환경은 이 글을 읽는 모든 이가 몸으로 이해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림1]
다만, 이런 돼지 사육에 좋은 환경은 돈가가 연중 낮은 결과를 보이기 마련이다. 최근 10년 독일과 한국의 돈가를 비교했을 때 [그림 2] 최근 수요량 증가와 사육 두수 최저치, 유럽의 동물복지와 환경규제가 대두되면서 독일의 소규모 영세농이 많이 사라지고,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23-24년 돈가는 매우 빠르게 올랐다.
가격은 결국 수요와 공급에 상관관계에서 결정된다. 수요가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면 자연스레 가격은 오르고, 공급 과잉이 되면 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 물론 식료품은 정부에서 물가안정을 위해 외부에서 수입을 해서 가격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시도를 한다.
우리는 COVID-19를 거치면서 경험했다. 코로나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회식이 사라지며 삼겹살에 소주를 먹는 인구가 현저히 감소하면서 돈가는 3,000원대 근방까지 내려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 사람들의 생활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회식 없이도 회사가 잘 돌아가네?’, ‘사람들 자주 만나지 않아도 되네?’ 등등 모임의 수가 현저히 줄어버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 업계에 던지고 싶은 화두가 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제외하면 한국 양돈 산업에 뭐가 남을까?
어찌 보면 우리나라 양돈은 삼겹살을 많이 먹고 소주도 많이 먹는 국민성이 키웠다고 생각한다. 돈가가 좋았던 시절도, 삼겹살의 인기가 워낙 좋으니 다른 부위의 가격이 떨어져도 삼겹살 부위로 메꿀 수 있었고, 그 인기가 좋다 못해 공급부족이 있어 삼겹살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코로나 이후 회식은 급감했고, 물가의 급등이 이어졌고 돈육 값은 낮게 유지되는데 삼겹살 가게들은 다른 물가의 영향으로 삼겹살 가격을 올려서 판매한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돼지고기가 금겹살이다 라는 식의 소리가 나온다. 그리고 소비심리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과 독일의 식탁 지형
한국은 돼지고기 하면 삼겹살부터 떠올리고 삼겹살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삼겹살만 꾸준히 소비되어도 돈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코로나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삼겹살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구울 때 냄새가 많이 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로 인해서 삼겹살은 대부분 식당에서 먹게 된다. 물론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필자의 집은 주말 낮부터 신문지 깔고 고기를 구워 먹었다. 하지만, 한국의 주거 양식은 대다수 아파트다. 고기를 구워 먹는다는게 쉽지만은 않다.
반면 독일은 어떨까? 독일은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식재료가 매우 저렴한 나라였다. 식자재는 저렴하지만, 식당에서 먹는 밥은 한끼에 적어도 10-15유로(원화로 15,000~22,000원)는 되었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필자는 맥주를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맥주는 배가 쉽게 불러와서 포만감이 적은 치즈나 살라미, 프로슈토 형태를 선호한다.
이런 환경이니 학회가 끝나고 슁켄 한봉지에 맥주 한 캔 들고 호텔에 들어가 그날의 일을 마무리하는데 매우 저렴하고, 깔끔했다. 거기에 이런 슁켄들은 야채와 곁들여서 먹거나 생으로 먹거나 요리하여 같이 먹는 형태로 제공되어 독일에 머무는 동안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유명한 학센은 경험하지 못하였다. 독일 방문 2일만에 느끼함으로 김치 결핍증을 앓기 시작한 동료 수의사들이 김치가 없다면 마라를 먹어 위를 깔끔하게 하자고 제안을 해왔었기 때문이다.
슁켄에 맥주를 경험하다 보니 한국 생각이 났다. 돼지고기를 먹고 싶어도, 냄새가 나서 구워 먹기 힘든 환경, 냄새는 어찌한다 해도 조리에서 준비까지의 과정, 삼겹살을 좋아하더라도 소주와 먹어야 하는 지인들, 고물가시대 저렴한 한돈이지만 식당에서는 비싸게 먹어야 하는 것 등.
돼지고기 자체가 현시대에 접근이 어려운 구조라는 판단이 들었다. 코로나 이후 줄어든 술자리, 소주에서 한번 먹더라도, 위스키, 브랜드, 고급맥주로 넘어가는 현황 그리고 그에 걸맞은 돼지고기 안주의 부재, 저렴하게 삼겹살을 소비자의 식탁에 공급해도 먹기 어려운 환경, 어쩌면 “삼겹살의 소주한잔”을 넘어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되었다.
한돈이 나아가야할 길
거창하게 한돈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벤치마킹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돈육 시장은 삼겹살의 소비가 여전히 주를 이루고 있고, 나머지 부위들은 인기가 적다.
결론적으로 공급이 많다면 소비를 늘려야 한다. 소비는 결국 최소 소비자의 트렌드를 따라가던가 앞서 가야한다. 간단하게 백종원 선생님이 티비나 유튜브에 한돈 요리 영상을 올리면 일정기간 검색어에 한돈이 상위권에
오르고 판매량도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케팅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그동안 생산의 관점에서 다산성모돈을 도입하고, 공급량을 늘려 수익의 증대를 가져왔다고 한다면, 이제는 가공, 유통의 관점에서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의사인 필자도, 대다수의 농장 종사자들도 결국은 생산의 일부이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시장 변화, 수요 변화에서 적절한 돈육 값을 사수하기 위해 모돈 수 감축을 주장해도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 뿐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가공, 유통의 방향에서 소비자의 소비심리를 자극해 꾸준히 팔릴 수 있는, “삼겹살의 소주한잔”을 뛰어넘어 앞으로의 10년, 20년 돈육소비를 꾸준하게 해줄 아이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생산자에게 가공, 유통의 과정까지 다하자는 것은 너무 거창한 소리이다. 이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임실의 치즈마을 같은 경우 벨기에 출신 선교사 지정환(벨기에 이름: Didier t‘Serstevens) 신부님이 계셨고, 지식을 널리 전파했다. 임실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듯 협회차원에서 2세 장학생을 선발하여 유럽의 슁켄, 프로슈트, 하몽을 만드는 현장을 배우고 한국에 돌아올 인재의 양성, 혹은 전문가를 한국으로 초청하여 그 지식을 배우는 행위를 한다던 지, 그런 과정이 있고, 한국에서도 삼겹살만 판매하는 것에 목메는 게 아닌 다른 부위로도 충분히 판매를 유도하고, 소비자의 식탁에 냄새 없이, 조리과정 없이 쉽게 접근 가능하며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돼지고기의 공급이 된다면, 어떨까?
거창하고 허무맹랑한 소리라는 비난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다양한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라이프치히 한 호텔방에서 한돈을 정말 좋아하는 소비자이자 수의사의 관점에서 글을 작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