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감(寶鑑)은 귀한 거울이라는 의미이다. 돈심보감(豚心寶鑑)은 돼지의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처럼 농가들이 새로운 눈으로 돼지를 살피고 스스로 되돌아보게 해 주는데 작으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비가 오면 웃는 우산장수도 있고 울어야 하는 짚신장수도 있게 마련이지만, 최근 내려준 여러 날의 봄비가 고맙다. 봄 가뭄이 극심했던 지난해를 떠올리면 하늘만 쳐다보며 농삿일을 하시는 노부모가 속을 태워야 할 일이 한 가지라도 줄어드니 다행스러울 일이다.
농사의 기본은 ‘물을 다스리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필자는 마늘 농사는 직접 지어 본 적이 없지만, 누군가 예전에 마늘을 파종하고 나서 바로 밭에다 며칠간 물을 넘치게 가두어 두었다가 빼주면 수확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며 '특별한 성공 노하우'라고 말하는 걸 들었던 적이 있다.
마늘 밭에 물을 주는 일은 기본이지만, 어떻게 물을 주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돼지를 키우는 농장에서도 물을 공급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고 음수의 품질과 양도 농장마다 관리 방법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농장의 성적에도 직결되는 부분이다.
이번 돈심보감에서는 양돈 현장에서 물 관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물이 생산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며 더 나은 관리 방법은 없을지 살펴 보도록 하겠다.
특히, 다가 오게 될 더위를 대비하여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미리미리 챙겨보는 것이 사후약방문을 줄이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1. 과연 우리 돼지들은 물을 제대로 마시고 있을까?
혹시 돈사나 돈방에 설치된 급수 설비들을 철따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수압이 정상적이지 않거나 막혀 있는 니플 등을 찾아내서 적시에 조치해 주는 농장은 얼마나 될까?
또한, 돼지들이 두당 하루 몇 리터의 물을 마시고 있는지 대략적인 감을 갖고 있는 농장주나 관리자는 얼마나 있을까?
아마도 그리 많을 것 같지 않다. 필자의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
농가들이 결코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소리가 아니다. 농장에서 해야 할 수많은 일들 중에 중요도와 우선 순위를 얼마나 두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대부분 농가들은 급이기에서 사료가 잘 흘러내리지 않거나 고장 난 것은 신경 써서 잘 찾아내고 챙기지만, 사료 섭취량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음수 시설이나 관리에 대한 관심은 많이 부족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역설적으로 물은 농장에서 거의 공짜에 가깝게 쓸 수 있다 보니 물이 새거나 급수가 중단되는 등 특별히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문제가 있지 않은 한, 일상적인 관리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고 큰 관심을 두지 않게 되는 경향이 있다.
돼지에게 있어서 물은 가장 중요한 영양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농장에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기대 이하의 관리 상태를 보여주는 농장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아직 여름이 온 것도 아닌데 이미 출하일령이 180일령을 넘어가는 농장은 물 관리에 대해 제대로 다시 짚어보아야 하며 아마도 앞으로 다루게 될 내용들에 비추어 농장을 살펴보면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이 눈에 띌 것이다.
더구나 이제 날씨가 점차 더워지기 시작하면 물로 인한 문제는 더욱 커지게 되고 여름철에는 출하일령이 200일 이상도 지연되는 경우를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아래 그래프는 모 농장의 육성사에서 사료섭취량과 음수량을 월별로 분석한 것인데 여름철에 물 소비량은 사료섭취량의 6~8배 이상 올라가고 특히, 육성 2번의 경우는 7월에 무려 12배 이상 급증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돼지가 여름에 물을 그토록 많이 마셨던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일반적인 농장 환경에서 돼지는 여름철에 다른 계절에 비교해 더 많은 물을 마시지 않는다. 아니, 더 많이 마셔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못 마시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필자의 결론에 대해 상당히 의아해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면 농장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거나 상식적으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결과가 늘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위 그래프에서 보이는 엄청난 물 소비는 그냥 버려진 것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 평소보다도 더 마셨다고 하기도 어렵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그것은 아래에서 동일한 기간 동안 비육사의 음수와 사료 섭취 그래프를 보면 이해할 수가 있다.
아래 비육사에서의 음수량 결과를 보면 사료 섭취량 대비 음수 소비량은 아주 약간 증가되었지만, 오히려 사료섭취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음수량도 같이 줄어버렸다.
체중이 낮은 육성돈보다도 더위를 많이 타는 비육돈들이 물을 더 많이 마셔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위 두 그래프는 어떤 차이가 있고 왜 위와 같은 현상이 벌어졌을까?
육성 2번의 경우 일반 니플 급수기만 2곳에 설치되어 있고 육성 3번의 경우는 일반 니플과 볼바이트 니플이 1개씩 설치되어 있다. 비육사의 경우는 모두 볼바이트 니플로 급수 장치가 이루어져 있다는 차이가 있다.
결국 두 그래프를 분석해 보면 여름철에 증가된 것처럼 보이는 물 섭취량은 모두 노출된 니플에서 물장난으로 허실이 일어난 것이고 실제 볼바이트 니플을 사용한 돈방에서는 물 허실이 많지 않았으며 비육사의 결과를 볼 때 여름이라고 하여 음수량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위에서 실제 농장에서의 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물 허실과 낭비를 줄이기 위해 어떤 형태의 급수 시설을 선택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쉽게 얻을 수 있으며 또한 어째서 실질적인 물 섭취량이 늘지 않았던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물 섭취량을 증가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2. 물 섭취량 감소의 원인과 대책은?
먼저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돼지들의 실제 음수량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특히, 여름에는 니플을 코로 누르고 샤워기처럼 사용하려는 돼지들이 늘어나고, 분뇨처리장은 다습하여 잘 건조되지 않는데다 장마로 인해 많은 물이 슬러리나 저장조로 스며들게 되어 오·폐수량이 많아진다. 이를 두고 여름엔 허실도 많지만, 돼지들의 음수량도 많아져서 그렇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여름철에 돼지의 음수 요구량이 더 높아지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잘못된 관리로 인하여 오히려 음수 거부가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그 주된 이유는 여름철에 물이 뜨거워지고 지저분해지는데다 더위와 함께 밀사가 높아지는 악순환이 되는 상황에서 돼지들의 음수 장치로의 접근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1) 물의 온도와 위생 관리
돼지의 음수량 감소를 일으키는 첫 번째 원인이 되는 물의 온도와 위생 문제에 대해 우선 짚어 보자.
돈사 내의 온도가 높은 농장이나 계절적으로 온도가 상승할 경우 물 탱크 내부 온도도 높아진다. 이로 인해 음수라인과 급수 장치에서 이끼나 미생물 증식이 활발해지고 급이기 내에서 물과 접촉한 사료를 빠르게 부패시켜 섭취량을 크게 떨어뜨린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급수 장치 내에서 죽이 된 사료는 돼지들이 코나 주둥이에 사료를 묻혀 옮겨놓은 것이다. 뜨거운 물에 말아져서 쉰 냄새가 난다.
돼지들이 썩은 냄새가 나는 물을 마시겠다고 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물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죽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죽지 않을 만큼 억지로 사료를 먹고, 물 역시 죽지 않을 만큼만 마신다.
다시 말하면 이처럼 급수기의 위생 관리가 안 되는 농장에서 돼지가 잘 크기를 기대하는 것은 '로또를 사지도 않고 로또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다.
위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필자가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은 급이기의 전형이다. 이런 형태의 급이기는 사료 섭취량이 많은 비육돈사에서도 관리가 쉽지 않다. 그런데 사료섭취량이 적고 급이기에 사료가 쌓이는 속도가 빠른 육성자돈사에 설치하는 것은 돼지를 모르는 어리석은 짓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매달려있는 니플을 모두 잠가 버리거나 급이기를 고철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 좋다는 독일제 수비어 니플을 달아준다 한들 해결되기가 어렵다.
급이기가 되었든 급수기가 되었든 돈사 내 온도가 높은 상황 하에서는 물과 사료가 섞여 빠른 부패가 진행된다. 이를 근본적으로 막아주지 못하면 음수 섭취량은 급격히 감소하고 출하일령 지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습식 급이기의 관리가 어려워서 급이기에 달린 니플을 사용하지 못하고 워터컵에 의존도가 높은 농장의 경우도 역시 위생 문제는 크게 나타난다.
늘 신경 써서 관리되지 않는 '워터컵'에는 사료와 똥으로 오염되어 '오물컵'이 되어있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워터컵이 여러 개 있는 돈방에서는 더더욱 오물컵이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돼지의 습성 상 깨끗한 쪽을 좋아하기 때문에 워터컵들 중 주로 선호하는 쪽 하나만 이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워터컵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더욱 심한 이용 불균형 현상을 보인다.
따라서 굳이 워터컵을 2개 이상 사용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서로 가깝게 붙여 놓는 것이 위생 관리 측면에서 그나마 유리하다.
이러한 문제를 좀 더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알쓸신돈에서 언급된 내용이 있고 다음 편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 드리는 것으로 하겠다.
2) 높은 밀사도와 음수 접근성 제한
우리나라의 농장들은 비좁은 축사 시설에서 모돈을 늘려놓다 보니 밀사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더운 여름에는 비육돈들의 성장 지연으로 인해 앞에선 정체되고 뒤에서는 밀고 올라와 샌드위치 상태에 있는 육성 단계에서의 밀사도가 특히 높다.
그러다 보니 100일령 이전의 육성기 돼지들은 과도한 밀사로 인해 성장 속도가 매우 더디고 유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비육기에 과도한 보상성장이 일어나거나 면역 저하로 인해 환절기의 호흡기 피해가 커지는 요인이 되기 쉽다.
밀사가 심하면 사료 섭취량도 문제이지만 음수 부족에 따른 스트레스가 더욱 크다. 사육두수 대비 부족한 급수 시설이나 낮은 수압, 급수기 고장, 급수 시설의 접근성 제약 등으로 인하여 물을 마시기가 어려워지면 돼지들은 염 중독으로 인해 폐사가 일어날 수도 있고 꼬리 물기나 배꼽 빨기 등의 이상 행동이 증가하게 된다.
▶물 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돼지의 이상 행동 동영상 보기>>
또한 돼지는 음수에 있어서도 서열 경쟁을 하는 특징이 있고 특히, 여름철에는 힘센 돼지들이 급수기 주변에 자리를 독차지 하고서 다른 돼지들의 접근을 막고 있거나 서로 급수기 주변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을 하게 되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그로 인하여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돼지들의 스트레스와 에너지 소모가 가중되기도 한다.
돼지들은 사육두수 대비 급수 시설이 부족한 경우나 특히, 더운 여름에는 본능적으로 급수기 주변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아래의 사진에서처럼 돼지들의 필사적인 노력을 보고 나면 갈증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 것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아래 동영상에서 보면 돼지들의 리얼한 음수 전쟁을 볼 수 있다. 해당 농장은 번식성적은 매우 우수한 반면 비육 시설의 부족으로 인하여 밀사가 일어나고 더구나 더운 환경으로 인해 물 부족 현상이 심한 상황이었다.
▶돼지들의 밀사 스트레스에 의한 음수 투쟁 동영상 바로 가기 >>
위의 사진이나 영상들은 다소 상태가 심한 농장의 사례에 해당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농장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습식 급이기나 급수 장치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음수의 낮은 품질이나 불량한 위생 수준에 의한 '음수 거부 현상', 그리고 급수기의 숫자나 접근성의 제약으로 인한 '음수 부족'과 '스트레스'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지금까지 일반 농가들의 음수 관리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짚어보았다. 이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어 보기로 하겠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