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감(寶鑑)은 귀한 거울이라는 의미이다. 돈심보감(豚心寶鑑), 돼지의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처럼 농가들이 새로운 눈으로 돼지를 살피고 스스로 되돌아보게 해 주는데 이 글이 작으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 제대로 된 한돈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한돈은 신선하다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고 그 자체가 바로 '브랜드'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돈 소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높아져 가고 수입육은 다양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자극하며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반대로 대부분의 육가공업체들은 지난 4월에 들어서면서 극심한 소비 부진 현상을 보인다고 토로하고 있고 4월말 기준 삼겹살 재고는 전년 대비 71%나 늘었다고 한다.
최근 하반기 재고 적체와 자금 회전의 어려움이 예상되면서 창고를 비우기 위해 손해를 보면서까지 많은 업체들이 덤핑 판매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물론 유통업체들의 그러한 주장이 모두 다 맞다고 보지는 않지만, 수입량의 급증은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고 국내산 돈육의 공급 증가가 맞물려 하반기를 미리 준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수입 돈육뿐만이 아니라 수입 우육도 높은 가성비를 무기로 밀고 들어오고 있다. 게다가 세계적인 고급 제품으로 명성이 높은 스페인의 이베리코 돼지고기는 그동안 수입산 돼지고기가 넘보지 못했던 백화점이나 대형할인점, 고급레스토랑은 물론 프랜차이즈 시장까지 잠식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점점 수입돈육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사라지고 매장에서 한돈이 밀려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는 것은 씁쓸해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한돈농가들과 유통업체들은 돼지고기 브랜드를 수없이 많이 만들어 내고 있지만, 대부분은 형식적이고 이름뿐이다 보니 일반돈과 구분이 가지 않는 경우가 많고 소비자들은 차별점이 없는 비싼 브랜드육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게다가 수입육을 적당히 끼워 팔거나 둔갑시키는 부도덕한 상술로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고 한돈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렇게 갈수록 치열해지는 수입육과의 경쟁에서 한돈의 지위를 유지하고 소비자에게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책도 변화해야 하고 농가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오래 키운 돼지가 품질(맛)이 좋은 것처럼 이야기 한다. 물론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것은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오래 키운 돼지가 품질이 좋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키워져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잘 알려져 있는 스페인의 이베리코 돼지도 체중이 200kg을 넘는다. 종부에 실패하여 탈락된 후보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고깃집은 손님이 줄을 설 정도로 맛이 좋다. 번식 외에는 특별한 하자 없이 정상적으로 자란 암컷인데다 체중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농가들의 출하일령은 200일이나 되는데 얼마나 더 길어져야 하는 걸까?
건강하게 잘 크지 못했다면 오래 키웠다는 사실이 고기의 맛과 육질을 높이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간혹 자신의 불량한 성적이 마치 돼지고기 품질(맛)을 좋게 하기 위해 오래 키우는 것처럼 왜곡된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천안에서 돼지고기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분이 회사로 연락을 해 왔다. 직접 통화를 해 본 결과 카길사의 사료로 키운 돼지고기만 받았으면 좋겠다면서 그런 육가공업체를 연결해 줄 수 있느냐는 문의였다. 꼭 카길사의 돼지고기를 받고자 하는 이유를 물어본 결과, '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돼지에게 무엇을 먹여 키우느냐와 얼마나 영양적으로 균형 있고 건강하게 키워졌느냐는 돼지의 맛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본사에 까지 직접 연락을 했던 그 돼지고기 식당 주인은 납품 받는 돼지고기에 대한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사료 영양이 돼지고기 맛을 좌우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한돈의 차별화는 꺼먹돼지를 늘리고 망갈리차 돼지를 들여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영양과 질병 없는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잘 키워냄으로써 한돈의 품질(맛)을 고급화하는데 있다.
다시 말하자면 수년 간 제자리 걸음을 반복하고 있는 MSY 17두, 출하일령 200일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한돈의 품질을 차별화하고 농가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다.
필자는 과거 지리산 근처에 들러 꺼먹돼지를 취급하는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어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백색 돼지보다도 맛이 없이 밋밋했고 기대 이하였다. 물론 건강하게 잘 자란 버크셔종 돼지는 일반 백색돈에 비해 맛이 고급스럽고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얼마나 균형 잡힌 영양으로 건강하게 잘 키웠느냐에 따라 고기의 맛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필자는 직업 상 수입산 돼지고기는 먹지 않는 버릇이 있지만, 직업 정신(?)을 발휘하여 이베리코 돼지를 몇 번 맛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맛이 주관적이라고는 해도 기대 이상인 경우도 있었고 전혀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식당에 따라서도 달랐고 같은 식당에서도 맛과 품질 차이가 컸다.
돼지의 품종이 맛을 차별화하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돼지고기 고유의 맛과 품질은 건강하게 잘 키워졌다는 전제 하에 제대로 발휘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성과 무게로 평가 받는 한돈이나 맛과 품종에 의해 평가 받는 한돈은 결코 이분법적으로 따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모두 중요한 요소들이며 서로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바탕에서 다양함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 한돈을 제대로 차별화하는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안전한 축산물 생산과 한돈 이미지 관리에 힘쓰자
아무리 잘 생긴 장동건을 내세워 한돈 홍보를 하더라도 구제역과 같은 전염성 질병, 중금속과 항생제 범벅, 고름 목심과 이상육 문제, GMO 논란, 살충제와 농약 검출, 감금틀과 공장식 축산등 부정적 이슈들이 선정적이고 부풀려져 전파를 타게 되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소비자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따라서 움직이게 되고 한돈의 소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부정적인 시각과 용어의 틀에 한돈산업을 가두어 놓고 농가의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규제 강화와 마녀사냥 하듯 축산농가에 불리한 여론 몰이를 일삼는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축산분야에서 과거에 비해 크게 발전되고 긍정적으로 변화된 많은 가치 있는 것들은 적극적으로 알리거나 설득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
최근 소비자들의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트렌드이다. 얼마 전 TV에서 정육업 종사자가 등장하여 고름이 차 오른 돼지 목살이 흔히 유통된다는 사실이 공개되어 큰 충격을 줬다. 가면을 쓰고 나온 정육업자는 도축된 돼지를 서슴없이 자르며 목살 부위에 숨겨진 '고름덩어리'를 언급했고 그 프로그램을 보았던 많은 소비자들은 경악을 하며 돼지고기를 기피하게 되었을 것이다.
실제 해당 보도가 나가고 나서 목살 판매가 부진해지고 가격도 떨어지고 재고가 쌓여 나간다는 소식을 들으며 TV 매체의 막강한 파워를 느낄 수 있었다.
구제역 백신 접종으로 생기는 이상육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고 있고 삼겹살 못지 않게 비싸게 판매되던 목살이 값어치가 하락하고 창고에 쌓이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조만간 피내접종을 위한 주사기의 국산화를 위한 개발과 전용 백신도 준비되고 있어 앞으로 이상육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된다.
항생제나 중금속 문제도 질병이 많은 현실에서 쉽사리 줄어들지 못하는 현실에서 검사 장비가 정밀해지고 더 강화되는 규제로 인해 농가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철저한 방역관리로 질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항생제와 중금속의 남용을 줄이고 많은 주사 치료와 백신 접종을 하면서 발생하는 이상육 문제도 근본적으로 바로 잡을 수 있는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제주에서 15년 만에 다른 지역 돼지고기 반입금지 조치가 해제되게 만들었던 축산폐수 불법배출 사건도 여론을 악화시키고 양돈인들 전체를 마치 범법자라도 되는 것처럼 안티양돈을 부추겼다.
과거에는 양돈농장을 바라보는 시각도 힘든 농사일이라는 생각에서 그래도 관대한 편이었지만, 지금은 엄청난 자본과 매출이 일어나는 기업이라는 인식과 함께 오히려 정반대가 되었다. 즉, 양돈인들의 경제적 지위가 높아진 것 이상으로 사회적인 역할과 책임을 요구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안티양돈'을 극복하는 것은 한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깨끗한 농장 가꾸기, 적극적인 냄새 저감 운동, 동물복지형 사육시설 도입, 기부 활동 등을 확대시켜 국민의 높아진 기대와 눈높이에 맞춰 나가고 한돈산업의 공익적 가치를 높이는 일에도 더 이상 소홀히 하거나 변화를 미룰 수가 없는 이유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당면한 문제들이 다양하고 쉽지 않지만 긍정적인 변화도 많이 눈에 띈다. 한돈의 소비 트렌드가 나날이 변화하면서 판매처도 다양해지고 IoT 스마트 판매 시스템이 오피스빌딩, 편의점, 리조트 입점에 이어 최근 ‘백화점’에 까지도 진입했다.
1천여 개에 달하는 한돈 인증점과의 제휴를 통한 프로모션도 다양하게 전개되고 온라인을 통한 축산물 판매도 급증하고 있으며 최근 한돈의 홍콩 수출 전략 수립을 위한 현지 시장 조사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고무적이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되는 시장에서 한돈에 거는 소비자의 높아지는 기대에 맞춰 돼지고기 이상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제공함으로써 한돈산업에 앞으로 다가올 많은 도전을 이겨내고 도약하는 기회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한돈이 가장 맛있고 안전한 먹거리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알려 나가고 한돈과 함께하는 문화도 만들고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한돈인들의 한층 성숙된 공동체 의식과 나눔의 리더십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어떤 산업도 성장하는 과정에서 넘어가야 할 벽과 건너가야 할 강과 마주치게 된다. 그러나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는 말처럼 한돈산업이 지금까지 만들어 왔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고 새롭게 변화하고 역할도 충실히 하여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굳건히 하기를 바란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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