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획한 야생멧돼지를 그리고 수거한 멧돼지 폐사체를 개인차량에 싣고 버젓이 시내를 돌아다닌다면?'
'이를 개인이 하루나 이틀 정도 자신의 집에 혹은 차량에 그대로 놔둔 채 보관한다면?'
'설마'라고 하겠지만,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게다가 해당 멧돼지는 ASF 감염개체로 확인된 경우도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2월 각 지자체에 멧돼지 사체의 이동-보관-처리 등 전 과정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사체창고 구비를 의무화하고 이를 전담관리인을 통해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관련 기사). 현장매몰을 하지 않고 사체 이동 시에는 사체를 비닐 등으로 밀봉하고 차량 내에는 대형 보관함을 설치하도록 했습니다. 멧돼지는 양성·음성 결과가 나올 때까지 냉동보관합니다. 이 같은 일련의 조치는 ASF 바이러스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함입니다.
여기에 더해 환경부의 야생멧돼지 ASF SOP는 '운반차량은 이동하는 과정 중 다른 장소를 경유하거나 정차하지 말고, 축사 등 방역사항을 고려해 최단거리 경로를 지정하여 운행'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돼지와사람의 취재 결과 곳곳에서 이 같은 수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멧돼지 관리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상황입니다.
날이 밝을 때까지 멧돼지 폐사체 알아서 보관하라는 지자체
최근 한 언론은 경북 영천시의 어이 없는 멧돼지 관리 행정을 지적했습니다(해당 기사). 포획단이 야간에 멧돼지를 잡은 경우 날이 밝은 후인 오전 9시부터 10시 사이 시가 운영하는 냉동창고에 폐사체를 입고하도록 지침을 내린 것입니다. 만약 밤 10시에 멧돼지를 포획했다면 포획단원은 최소 8시간 동안을 본인 차량 또는 개인 냉동창고에 멧돼지를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SOP 상 운반차량이 다른 장소를 경유하거나 정차하지 말라는 지침을 어길 것을 시가 요구한 셈입니다. 영천은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감염멧돼지가 매달 꾸준히 발견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55마리입니다.
주말 폐사체 보관할 바에 금요일 멧돼지 잡지 말라는 지자체
영천보다 더한 시군도 있습니다. 대구 군위군입니다. 군위군은 최근 주말 동안은 멧돼지 폐사체 반입을 불허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이를 관내 포획단과 폐사체 수거요원 등에게 전달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만약 금요일 저녁에 멧돼지를 포획한 경우 토요일과 일요일 최소 48시간 이상을 역시 본인 차량이나 개인 냉동창고에 보관해야 합니다. 멧돼지 성체의 경우 덩치가 커 차량 적재함 보관이 불가피합니다. 여름철 파리가 꼬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주말 불가피한 일이 생기는 경우 폐사체를 싣고 군위군 관내를 돌아다니는 위험천만한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전하며 포획단이 시정을 요구하자 군 관계자는 차라리 금요일에는 포획활동을 하지 말 것을 종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돈협회 군위군지부는 "어이없는 일"이라며, "군에 강하게 항의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군위군 역시 지난달부터 감염멧돼지 발견시군입니다(누적 10마리 발견).
ASF 멧돼지 폐사체 밀폐 조치 관리 안하는 지자체
경북 영천 사육돼지에서 ASF가 확진된 날인 지난달 15일 경북 의성군 안사면 만리리의 임야에서 6개월령 암컷 멧돼지가 수렵인에 의해 총기 포획되었습니다. 해당 멧돼지 포획 개체는 아무런 밀폐포장 없이 운반되어 그대로 차에 실렸습니다(사진). 그 사이 혈액 등 분비물이 외부로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비물에는 경북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돼지를 감염시킬 수 있는 충분한 바이러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양성 판정 결과는 21일 나왔습니다(#4090). 통상 검사 소요 기간이 하루 전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러분의 추측에 맡기겠습니다.
올해 벌써 사육돼지에서의 ASF 양성 사례가 6건이나 발생했습니다. 6건 가운데 4건이 경북 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경북은 ASF 감염멧돼지가 가장 많이 발견되고 있는 지역입니다. 이에 정부는 어제(8일) '경북지역 야생멧돼지 ASF 집중대응계획'을 내놓았습니다. 멧돼지 포획과 폐사체 수색 강화 등이 골자입니다(관련 기사). 또한, 경북도는 전체 농가 274호에 대해 다음달 2일까지 8대 방역시설 및 방역수칙 준수 여부 등을 점검하고 위반 사항 적발 시에는 과태료 등 패널티를 적용한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제 눈에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 티끌을 탓한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상황입니다. 멧돼지 폐사체 관리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과 시정이 시급해 보입니다.
이득흔 기자(pigpeople1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