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야생멧돼지를 통한 ASF 바이러스의 지역 확산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양돈장에서 ASF가 추가로 발생했습니다.
방역당국은 전국의 돼지농장에게 바이러스가 유입되지 않도록 재차 철저한 차단방역을 강조했습니다. 농장 울타리에는 '야생멧돼지 기피제'를 설치해 멧돼지 접근을 차단하도록 했습니다. 일부 지자체는 농장 주변에 기피제를 긴급 대량 살포하기도 했습니다.
'야생멧돼지 기피제'는 멧돼지가 농장 내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화학제제입니다. 멧돼지 등 야생동물이 싫어하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성분을 담고 있습니다. 지난 '19년 야생멧돼지에서 ASF 발생이 확인되면서 양돈농장의 새로운 상시 강제 사용품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양돈농가들은 기피제의 효과에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시군에서 나눠주며 반드시 농장 울타리에 매달라고 하는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고, 효과도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한 양돈농가는 '과수원도 잘 안쓰는 멧돼지 기피제를 전국의 양돈농가가 다 써주고 있다'라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실제 경남의 한 과수농가는 돼지와사람과의 통화에서 "기피제로 멧돼지 접근을 막는 것은 효과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전자 철책'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효과가 없다는 과수농가의 말이 사실일까? 그러고보면 TV와 신문에는 매년 과수뿐만 아니라 작물농가들이 멧돼지, 고라니 등으로부터 엄청난 피해를 호소하는 소식을 접하곤 합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 규모는 약 1000억 원에 달하는데, 이 중 가장 큰 피해를 끼친 야생동물은 멧돼지였으며, 전체 피해의 5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부가 강력 권장하는 기피제가 있는데 왜?'라는 의문이 듭니다.
돼지와사람은 기피제를 생산공급하고 있는 국내 한 제조사에 실제 적용 시험 자료를 요청하였는데 끝내 자료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유튜브에서는 멧돼지 기피제에 대한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상 아래 댓글을 보면 효과가 없다는 의견이 상당수입니다. "기피제 효과 몇일뿐이다", "효과있다는 것 다 사기 같은 얘기다", "도움 전혀 안된다" 등등...
전문 연구 결과는 어떨까? 지난 '14년 환경부 등의 의뢰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낸 '멧돼지 서식지 이용 특성 파악 및 피해방지기술 개발' 보고서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한 지역에서 기피제를 멧돼지 피해가 최초 발생한 이후 논둑 약 5m 간격으로 매달 1회 살포하고, 이후 피해 정도를 측정하였는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멧돼지 농장에서도 실험을 했는데 농장 멧돼지의 경우 기피제를 기피하는 경향을 보여 접근을 꺼려하였으나, 먹이 주변에서는 꺼려하는 경향을 보이면서도 계속적으로 접근하여 먹이를 섭식하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결론에서 연구팀은 기피제가 가격이 저렴하고 설치가 쉬우나 효용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는 의견을 표했습니다. 참고로 여러 가지 피해 방지 시설을 실험한 결과 가장 효과가 있는 것은 '전기펜스'로 나타났다고 전했습니다.
야생멧돼지 기피제에 한 수의전문가는 "전국의 양돈농장은 이제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다. 농장 앞 출입문도 상시 닫힌 상태로 운영하고 있다. 농장 내로 멧돼지가 들어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멧돼지 기피제는 더 이상 예산 낭비라는 생각이다. 이제 강제로 달게 하는 조치는 중단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관련해 정부의 해명이 궁금합니다. 생석회나 거점소독처럼 도움이 아예 없지는 않다는 의견일 듯합니다.
이득흔 기자(pigpeople1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