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관련단체협의회(이하 축단협, 회장 손세희 대한한돈협회장)가 발표한 성명서가 축산업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단독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한우산업지원법,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농어업회의소법 등 4개 농업 관련 법률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했습니다(관련 기사).
당일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농안법에 대해 "막대한 재원이 사용돼 청년농업인, 스마트농업 육성과 같은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라는 이유 등을 들어 동의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신속하게 발표했습니다.
이렇듯 민주당과 농식품부의 대립이 첨예한 가운데 지난 22일 축단협을 이끌고 있는 한돈협회는 '축산농민들이 동의하지 않는 양곡관리법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약 한 시간 뒤 성명서 취소하면서 "성명서 내용 중 일부 단체의 이견이 있어 23일 오전 중으로 수정된 성명서를 재발송하겠다"라고 전했습니다.
다음날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습니다. '양곡관리법'과 '농안법'을 추진하는 민주당 농업정책 관계자는 직접 한돈협회에 전화를 걸어 법안에 대해 이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한돈협회는 성명서 발표를 강행했습니다(관련기사). 전날부터 성명서 발표에 이의를 제기했던 한우협회는 발표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성명서 발표 이후 몇몇 단체들은 '논의된 바가 없다',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등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성명서는 논리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국회에서 법이 만들어지면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을 별도로 만드는 것이 보통의 순서인데 축단협은 경종농가를 지원하면 축산업 예산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농식품부 주장과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논리라면 한우지원법과 한돈지원법을 비롯한 모든 법 제정과 개정에 반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관련하여 한우협회 관계자는 "한돈협회가 양곡관리법과 농안법 개정에 예산이 들어가면 축산업 예산이 줄어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라며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을 따서 농업의 파이를 크게 할 생각을 해야지, 있는 예산을 가지고 농업이 서로 싸워서야 되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축단협 성명서는 한돈협회가 정치에 있어 독립적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손세희 한돈협회장은 당선 후 국회와의 접점을 늘리겠다고 했습니다. 국회에는 여야가 있고 양쪽과 관계를 잘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거대야당이 주도하는 법을 반대하고 나서는 것이 시기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한돈협회의 전략이 무엇인지 고민스럽습니다. 제22대 총선에서 범야권세력이 189석의 압도적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앞으로 야당의 도움 없이는 어떠한 법도 만들거나 개정할 수 없는 상황인데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경종농가를 위한 법에 반대를 하고 나선 것입니다. 게다가 한돈협회는 한돈지원법 제정을 바라고 있습니다(관련 기사).
또 다른 민주당 농업정책 관계자는 "한돈협회가 이번 양곡관리법·농안법과 관련해 왜 이슈의 전면에 나서는지 당혹스럽다"라며 "한돈협회가 경종농가들은 지원하지 말라고 하면서 한돈산업을 지원하는 한돈지원법을 만들라고 하는데 이해할 수 없다"라고 전했습니다.
한 한돈산업 관계자는 "한돈협회가 관변단체처럼 행동하는 것이 무슨 이득이 있는지 모르겠다. 혹여 농식품부의 요구가 있다고 해도 이번에는 침묵을 선택했어야 한다"라며 "기후변화와 생산비용 상승으로 농업은 정부의 지원이 꼭 필요한 산업인데 절대 다수당에 맞서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라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성명서가 발표된 당일 농식품부는 농업인단체 사무총장 간담회를 열고 후속 대응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5월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둔 민주당 또한, 대책 회의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성명서 논란이 향후 국회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
이근선 기자(pigpeople1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