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럽연합(EU) 국가에서 생산된 가금·가금육제품 및 돼지·돈육제품에 대한 기존 수입위생조건을 일부 변경하는 내용의 개정고시안을 이달 1일부터 21일까지 행정예고했습니다(관련 기사).
개정 내용은 유럽연합(EU) 수출국에서 고병원성 AI 또는 ASF가 발생했더라도 EU의 방역규정과 우리나라-수출국간의 합의된 조건을 충족하면 비발생지역에서 생산된 동물과 축산물을 수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개정안이 확정되면 독일 내 비발생지역 돼지고기의 정식 수입이 가능해집니다. 스페인에서 ASF가 발생하더라도 일단 수입 금지 조치 후 비발생지역 돼지고기에 대한 수입이 논의될 수 있습니다. 결국 EU산 동﮲축산물 수입에 있어 이른바 '지역화(Zoning 또는 Regionalisation)' 개념을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지역화' 인정을 바탕으로 한 축산물 수입은 처음은 아닙니다. 이미 지난 2018년 브라질산 돼지고기에 대해 적용된 바 있습니다. 현재 브라질의 산따까따리나주 지역이 구제역 비발생지역으로 인정되어 돼지고기가 수입되고 있습니다.
'지역화'는 유럽과 미국 등이 주도하고 있어 그 의도가 뻔합니다. 자국 농업과 농민,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 정부도 이번 개정안과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 동식물위생검역(SPS) 협정 및 세계동물보건기구(WOAH) 육상동물위생규약 등의 국제 기준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고 밝혀 자발적인 개정은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지역화'를 단지 '방역'의 개념으로만 접근해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지난 1일 농식품부는 개정안과 관련한 보도자료에서 "청정지역 생산 동﮲축산물을 통한 가축질병 유입위험이 극히 낮은 수준으로 평가되었다"며, "(앞으로도) 동﮲축산물이 국내로 반입되면 식품안전에 문제가 없도록 현물 검사, 바이러스 유무에 대한 검사 등 검역 과정을 철저하게 관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산업에서는 이번 EU산 축산물에 대한 '지역화' 인정·도입은 사실상 '지역화'의 전면 도입으로 보는 주장이 있습니다. EU산에 인정된 '지역화'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향후 몇 년내 미국산, 중국산, 일본산, 베트남산, 브라질산, 멕시코산 등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대한한돈협회도 "이번 개정으로 ASF 발생국인 독일 등에서 생산된 돼지고기의 수입이 허용되고, 더 나아가 EU 외 다른 나라에서도 향후에 EU와 동등한 조건으로 수입허용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지역화'에 이어 '구역화(Compartmentalisation)' 개념도 도입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구역화는 지역을 좀더 좁게 인정하는 개념입니다.
관련해 한 산업 관계자는 "지역화는 향후 한돈산업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며, "이에 지역화를 방역의 개념이 아니라 산업보호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개정에서 단순히 의견 조회가 아니라 토론회를 통한 공론화뿐만 아니라 관련한 산업 파급 영향 등의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득흔 기자(pigpeople1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