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원고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양돈산업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이해를 돕고자 기획된 글 입니다. 초고속정보화 시대를 맞아 지속가능한 한돈산업을 위해 소비자들과의 소통과 공감이 점차 요구되고 있습니다. 잠시 일반인의 눈으로 양돈산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돼지와사람]
우리가 잘 아는 심청전의 주인공 청이는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심봉사가 청이를 업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젖동냥으로 키웠다는 얘기는 너무나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돼지 농장 분만사에는 이런 청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새끼 돼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어떻게 키울까요?
바로 농장의 분만사 관리자분들이 젖이 필요한 새끼 돼지들의 심봉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젖을 줄 수 있는 유모돈( 乳母)을 찾아서 새끼 돼지들을 키우게 됩니다. 농장에서는 유모돈을 주로 대모돈( 代母 ), 즉 대리포유모돈이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분만사에서 일어나는 '젖동냥-유모돈'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언제 '유모돈'을 찾아야 할까?
도와줘요 유모돈
1. 이번 여름과 같이 사람도 감당하기 힘든 더위에서 농장의 돼지 중 가장 힘들었을 녀석들은 아마도 뱃속에서 새끼를 품고 있는 임신 모돈이었을 것입니다. 무더위에 적게는 10마리, 많게는 20마리까지의 새끼들을 뱃속에 품고 간신히 115일을 견뎌 새끼들을 세상에 내놓지만, 분만 직후 회복을 잘 못하는 모돈의 경우 간혹 새끼들을 남긴채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어미를 잃은 새끼 돼지들에게는 유모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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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행히 엄마를 잃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분만 후 엄마의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마 돼지가 젖을 줄 힘도 없겠죠. 자꾸 젖을 달라고 보채는 새끼들이 부담스러운 어미 돼지는 웅크린 자세로 젖을 숨긴 채 밥도 먹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엄마 돼지가 젖을 주고 싶어도 젖량이 많지 않은 경우도 있죠. 젖을 먹지 못한 새끼 돼지들의 배는 홀쭉해지고 계속 야위어 갑니다. 이렇게 젖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새끼 돼지들에게는 유모가 필요합니다.
젖을 먹고 싶은 배고픈 새끼 돼지들이 연신 주둥이로 엄마 젖을 마사지하지만 젖이 나오지 않는다. 저렇게 새끼 돼지들이 1분 이상 마사지를 하는 경우는 대개 젖 량이 부족하거나 젖이 마른 경우이며, 유모가 필요한 상황이다@김동욱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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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엄마 돼지의 젖꼭지는 보통 14개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젖이 잘 나오지 않는 젖꼭지가 있을 수 있죠. 이번에 16마리의 새끼를 낳은 엄마 돼지는 실제로 젖이 나오는 젖꼭지가 12개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12개의젖꼭지를 16마리의 새끼 돼지들이 사이좋게 나누어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엄마의 젖이 나오는 젖꼭지 수 보다 새끼들이 더 많이 태어나면 이런 아이들을 위해 유모가 필요합니다.
어떤 모돈이 유모가 될까요?
그림이 함께 있는 심청전의 동화 버전을 다시 볼까요? 심봉사가 심청이의 젖동냥을 부탁하는 동네 아녀자들은 모두 아기를 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유 중인 아녀자가 아니라면 젖을 먹일 수 없으니까요. 돼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포유를 하고 있는 모돈에서 유모돈을 선택해야겠죠.
분만사 관리자들은 포유 중인 모돈 가운데 젖이 좋은 모돈을 선택해 유모로 선정합니다. 돼지들은 비슷한 일령에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는데, 그중 새끼들을 토실토실하게 잘 키우는 모돈이 있다면 그것은 모돈의 젖량이 풍부하고, 젖의 상태가 좋다는 증거입니다. 관리자들은 그런 모돈이 포유하던 새끼 돼지들을 떼내고 그 자리에 젖동냥이 필요한 새끼 돼지들을 붙여줍니다.
그럼 먼저 젖을 먹던 돼지들은 어디로 갈까요? 농장의 새끼 돼지들은 보통 4주 정도 엄마 돼지의 젖을 먹습니다. 즉 농장의 분만사에는 포유 1주 차에서 4주 차까지 모돈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유모를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빈자리를 만들어 줘야 하는데요. 결과적으로 빈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녀석들은 엄마 곁을 떠나야, 즉 젖을 떼야 합니다. 그래서 생후 4주 차 또는 3주 차 후반에 있는 새끼 돼지들 중 상태가 우수해 젖을 떼도 충분하다고 판단이 되는 녀석들은 다른 또래보다 조금 일찍 젖을 떼게 되고, 젖을 먹지 못한 새끼 돼지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게 됩니다.
젖동냥을 거절하는 유모돈에겐 '술'을?!
'어미 돼지들은 자신 낳지 않은 돼지들에게 모유를 잘 줄까?'라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할 겁니다. 유모돈이 수유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냐고요? 물론 있습니다. 돼지는 후각이 굉장히 민감한 동물이어서 냄새로 자기 새끼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대개의 경우, 수유 거부는 자연스럽게 해소가 됩니다.
일단 수유를 거부하더라도 모돈의 유선에 젖이 차오르게 되고, 수유를 거부하면 결국 젖에 통증을 느끼거든요. 또 옆에서 계속 젖을 달라고 새 엄마를 조르는 새끼들의 등쌀에 유모돈은 젖을 내밀고 새로운 새끼들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간혹 성격이 예민한 모돈들은 남의 새끼를 붙여주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유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젖을 달라고 조르는 새끼가 맘에 안 들어 주둥이로 새끼들을 쳐내기도 하고 물어서 상처를 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수유를 거부하는 모돈이 확인되면 관리자분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이용해 모돈의 수유 거부를 해소하고자 합니다. 관리자들은 모돈의 예민한 상태를 풀어주기 위해 진정제를 사용해 모돈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포유를 하게끔 유도합니다.
또 진정제 대신 맥주와 같은 주류를 이용해 모돈의 진정을 유도하고 수유를 하게끔 합니다. 이때 사용되는 주류는 나라별로 선호하는 게 다릅니다. 서유럽은 주로 예민한 모돈에게 맥주를 줍니다. 그리고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보드카를 준다고도 하고요. 우리나라에서는 막걸리를 주기도 합니다. 과하지 않지만 살짝 진정이 될 정도의 술 한 잔에 모돈은 편안히 옆으로 누워 젖을 내밀게 되고,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새끼 돼지들은 새엄마의 젖을 빨며 서로가 받아들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농장에서 뮤모를 찾는 과정, 그리고 새엄마와 새 아기 돼지들 간의 적응을 시키는 과정은 농장에서 가장 조심스레 행해지는 과정입니다. 유모가 될 자격을 갖췄는지 세밀하게 파악해 선정하고, 이동 후에도 서로가 서로를 잘 받아들이는지 수시간을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죠. '유모돈을 찾는 과정'은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여야 하는 작업이지만 새끼 돼지들을 위해 꼭 필요한 농장의 일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