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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농장 이야기

[김동욱의 돼지농장 이야기(19)]가축을 키우는 사람의 마음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의 마음과 다를까?

'한별팜텍'의 '김동욱 수의사'가 전하는 동물복지 이야기

[본 원고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양돈산업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이해를 돕고자 기획된 글 입니다. 초고속정보화 시대를 맞아 지속가능한 한돈산업을 위해 소비자들과의 소통과 공감이 점차 요구되고 있습니다. 잠시 일반인의 눈으로 양돈산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돼지와사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번씩 내리는 비가 더위를 식혀주곤 했는데, 이젠 비가 내리고 나면 더 높아진 습도로 숨쉬기도 힘들 정도네요. 사람도 그리고 동물들도 모두 견디기 힘든 시절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시원한 겨울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제주시에서 한라산을 지나 서귀포로 넘어가는 5.16도로 초입에는 제주대학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 대학교 뒷자락에는 말과 소들이 자라는 실습목장이 있구요. 아래 사진은 2010년 겨울 실습목장을 올라가며 찍은 사진입니다. 더위가 조금은 덜 해지시나요?

 

 

위 사진을 찍었던 이유는 경치가 좋아서나 눈보라가 멋져서가 아니었습니다. '생명을 키운다는 게 저런 눈보라 따위는 이겨내야 되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이 눈보라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해 드릴게요.

 

제가 수의학과 학생이던 시절, 방학 때마다 선배가 운영하는 농장에 실습을 나가 돼지에 대해 배우곤 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 육지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제주도에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농장에 근무하는 식구들은 외부 출입을 삼가고 농장에서 생활하며 구제역 유입을 막기 위해 만전을 기했죠. 당연히 저도 농장에서 실습을 할 수 없었구요.

 

그런데 막상 실습을 못 간다고 하니 돼지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죠. 바로 학교 목장에 있던, 꽤나 오래 비어있었던 돈사에서 돼지를 키워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순진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배님께 이런 생각을 말씀드리니 20㎏ 정도 되는 자돈 6마리를 분양(사실 기특하셨는지 그냥 주셨습니다^^)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학과 교수님께 도 말씀드리니 흔쾌히 학교로부터 돈사 사용 승낙을 받아주셨죠.

 

그렇게 돼지들이 들어오고 학교에서 돼지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학교에 가서 강의가 시작되기 전 아침밥을 주고 돈방을 치워주고 돼지를 보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또 농장에 올라가 돼지를 보고, 저녁엔 다시 돼지들 밥을 주고 돈방을 치워주고, 주말에도 아침, 저녁으로 학교에 출근하며 오롯이 돼지들을 위해 시간을 보냈습니다.

 

 

문제는 혹독한 겨울이었습니다. 제법 따뜻한 제주의 겨울날씨는 한 번 변덕스러워지면 무서운 눈을 쏟아냈습니다. 한라산 초임에 위치한 학교인 터라 아래 동네에 비해 눈은 금방 쌓이고 도로도 체인을 감은 대형 차량만 통행이 가능한 상황이 종종 연출되곤 했습니다.

 

방학이지만 돼지들을 위해 매일 학교로 출근하는 것은 제게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눈오는 날은 정말 괴로웠습니다. 시내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미끌거리는 도로로 학교까지 올라가는 것도 아슬아슬했지만, 문제는 학교 정문에서 목장까지 올라가는 일이었습니다. 등산화를 신어도 감당이 안 돼 결국 아이젠을 차고 학교 정문에서 목장까지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 돼지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렇게 고생고생 올라가면 돼지들은 아래 사진처럼 따뜻한 보온등 밑에서 잠을 자며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드르렁 거리며 코를 골며 자는 녀석들도 있었구요. 그래도 그런 녀석들을 보면 눈보라와 추위에 무탈하게 밤을 넘긴 녀석들이 고마웠고, 비어있던 밥통에 사료를 채워주면 득달같이 그 소리와 냄새를 맡고 일어나 맛있게 먹는 녀석들을 보면서 행복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시련(?)들을 함께 하며 녀석들과 시간을 보낸 지 언 4개월. 한참 큰 녀석들을 내보낼 때가 되었습니다. 함께 해서 즐거웠고 행복했던 시간, 녀석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지만 헤어짐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구요. 그렇게 녀석들과 작별을 했습니다.

 

 

이 4개월의 시간을 겪으면서 제가 느꼈던 것은 가축이건 반려동물이건 키우는 사람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흔히 우리가 얘기할 때 가축을 키우는 일을 축산업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가축을 키우는 산업이라는 얘기죠. 하지만 축산업은 여느 다른 산업과는 많이 다릅니다. 생명을 키우는 일이니까요.

 

주말의 달콤한 휴식, 그리고 원할 때면 언제든 갈 수 있는 휴가는 사실 가축을 키우는 분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사무실 컴퓨터나 공장의 기계를 멈추고 쉴 수 있는 다른 산업과 달리 농장의 가축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이라고 쉬지 않습니다. 가축들은 농장 식구들의 보살핌이 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매일 같이 필요한 친구들입니다. 그래서 농장에서는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그리고 다른 분들이 휴가를 즐기는 여름에도, 그리고 설과 추석같은 명절 연휴에도 반드시 일정 인원은 농장의 동물들과 함께 생활을 합니다.

 

사실 저 4개월의 경험을 매일같이 하고 계시는 농장 가족들도 있습니다. 저 역시도 졸업을 하고 농장에서 근무를 할 때 마찬가지였구요. 주말에도, 그리고 명절에도 농장에 나가야 할 때면 아쉬워하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보다 혹시 어제 밤 녀석들에겐 별일이 없었는지 궁금해 하며 새벽같이 출근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것들은 자신이 키우는 동물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하겠죠.

 

 

축산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흔히 농장에서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돼지를 사육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가축을 키운다는 것은 반려동물과는 목적이 다릅니다. 하지만 저 4개월의 경험, 그 이후 돼지들과 보낸 시간과 그동안 만났던 농장식구들을 보면서 생명을 소중히 대하는 마음 만큼은 같다는 걸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그런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찜통  같은 무더위에 땀을 흘리지 못하는 돼지들의 땀까지 대신 흘려주며 일하는 농장 식구들에게 여러분들의 응원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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