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돈 군사 사육 의무화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전국 양돈농가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실태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오는 2030년 1월부터 기존 돼지사육업 허가농가에도 임신돈 군사공간 확보가 전면 의무화되는 만큼, 실제 사육 형태와 시설 현황을 면밀히 파악해 향후 지원·제도 보완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이번 조사는 지난 10월 14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임신돈 군사사육의 부작용과 사육두수 감소(46%) 우려가 집중 제기된 직후 진행되고 있어, 향후 정책 수정·유예 논의의 분수령이 될지 주목됩니다(관련 기사).
‘25.11.24~12.19 전국 조사… “군사시설 설치 지원 대책에 활용”
본지가 입수한 '임신돈 군사공간 확보 의무화 관련 현황 조사 계획'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2025년 11월 24일부터 12월 19일까지 약 4주간 모돈 사육 농가를 대상으로 임신돈 사육 형태와 시설 현황을 조사합니다.
각 시·군은 농장별로 △사육 두수 △관행 스톨·군사사육 여부 △군사시설 유형(반스톨, 자유출입스톨, 자동급이군사시스템, 바닥급이, 카페테리아식 급이시설 등) △시설 면적과 인증 현황 등을 농식품부에 제출하게 돼 있습니다.
계획서에는 조사 목적이 “임신돈 군사 공간 확보 의무화(축산법 시행령 별표 신설, 2030년 1월 1일 전면 시행)에 대비해 모든 사육농가의 사육 형태 및 시설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또한 향후계획으로 “2030년 1월 임신돈 군사공간 확보 의무화 전면 시행 관련 군사 사육시설 설치 지원 등 대책 마련에 활용”한다고 적시해, 조사 결과가 재정·정책 지원 설계의 기초자료가 될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농식품부 “유예·수정 여부, 이번 조사 결과 토대로 검토할 사안”
그러나 최근 농식품부가 배포한 임신돈 군사공간 현황 조사계획서에는 “전면 시행 관련 군사 사육시설 설치 지원 등 대책 마련에 활용”이라는 문구 외에 유예·보완 가능성은 직접적으로 언급돼 있지 않아, 양돈현장에서는 “의무화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수순 아니냐”는 불안도 적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돼지와사람'과의 통화에서 “국감 때 생산자 단체 참고인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힌 만큼, 정부도 실제로 농가들이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며 “이번 조사는 그런 의미의 ‘사전 현황 파악용’ 조사”라고 설명했습니다.
덧붙여 “현재 농가별 군사시설 구축 현황이 정리돼 있지 않아, 어느 정도 규모로 준비돼 있는지 기본 데이터가 없는 상황”이라며 “농가분들이 이번 조사 자체를 너무 부담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임신돈 군사 의무화의 유예 가능성에 대해서는 “유예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추후 검토해야 할 내용”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그 검토 과정을 거치기 위해 필요한 사전조사”임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또한 “군사사육 자체를 우리나라에서 아예 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직 기간이 많이 남아 있고,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사안이라 지금 단계에서 말하기는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사실상 정책의 기본 방향은 유지하되, 시행 시기·방법을 포함한 일부 조정 여지는 열어둔 것으로 해석됩니다.
“사육두수 46% 감소? 아무도 해본 적 없는 숫자… 실증·가이드라인부터”
현장 양돈농가의 시각은 보다 구체적입니다. 한 농장주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국감장에서 거론된 ‘46% 감소’ 수치를 두고 “지금 군사사육을 하면 모돈수가 줄어드는 건 맞지만, 20~30%든 46%든 어떤 숫자도 근거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스톨을 군사로 바꿨을 때 모돈이 몇 % 줄어드는지 실험해 본 곳이 없다. 축산과학원도 돼지를 비운 상태고, 국가 차원에서 실제 사양 데이터를 뽑을 수 있는 시험농장이 사실상 없다”며 “외국 자료만 보고 ‘몇 % 줄어든다’고 하는 건 농가를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다른 농가는 “우리 현실에서 유럽처럼 스톨을 완전히 없애고 자유방목형 군사를 만들기는 어렵다. 기존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결국 반스톨 형태가 그나마 현실적인데, 주차별로 모돈을 나눠 관리하려면 중간에 칸막이를 넣어야 해서 모돈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현재 논의는 스톨 면적만 가지고 ‘동물복지 충족·미충족’을 따지지만, 실제로는 스톨 앞뒤 이동통로 면적까지 합쳐야 하고, 군사로 바꾸면 주차 관리 방식에 따라 필요한 면적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설명했습니다.
덧붙여 “정부가 한국 현실에 맞는 한국형 군사모델을 시험·설계하지 않은 채, 기간은 정해놨으니 농가가 알아서 방법을 찾으라고 하는 꼴”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한국형 동물복지 모델·인센티브 없이 의무만… 농가에 숙제 떠넘기지 말아야”
농가들은 공통적으로 “군사사육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형 동물복지 모델과 경제적 인센티브가 없는 상태에서 의무화만 앞세우는 것은 문제”라고 입을 모읍니다.
한 양돈농가는 “법 시행까지 시간이 남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임신돈 군사시설을 지으려면 설계·인허가·투자·시행까지 시간이 걸린다”며 “정부가 현실을 제대로 보려면 단순한 체크리스트 조사로 끝낼 게 아니라, 군사 전환이 가능한 농가와 불가능한 농가를 구분해 구체적인 지원·보완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실태조사가 단순한 현황 파악을 넘어, 농가는 실제 현장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냉정한 데이터’를 제출하고, 정부는 그 결과를 토대로 유예·지원·제도 보완 여부를 솔직하게 밝히는 투명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동물복지와 생산기반 유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정부와 현장의 본격적인 논의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근선 기자(pigpeople100@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