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F 방역을 이유로 경기북부와 강원 전체에 대해 권역화, 사실상 '고립화' 정책이 전개되는 가운데,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가 전국을 대상으로 ASF 발생 대비 '권역화'를 추진하고 나섰습니다.
농식품부의 관련 문건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도축, 분뇨, 돼지이동 등 양돈생태계를 고려하여 전국을 16개 구역으로 미리 권역화하고 해당 권역 내 농장에서 ASF가 발생할 경우 'ASF 권역'으로 자동으로 지정합니다. 이 경우 해당 권역 내 농장은 돼지·분뇨의 권역 밖 반출입이 금지됩니다. 권역 내에는 지정 축산차량만이 운행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충남 홍성의 야생멧돼지에서 ASF가 발생할 경우 홍성뿐만 아니라 태안, 서산, 당진, 아산, 천안, 예산, 보령이 함께 충남북부권역으로 묶여 관리되는 것입니다.
농식품부가 잠정 검토하고 있는 16개 권역은 기존 경기북부와 강원북부와 함께 경기남부, 강원남부, 충북북부, 충북남부, 충남북부, 충남남부, 경북북부, 경북남부, 전북북부, 전북남부, 경남동부, 경남서부, 제주도, 울릉도 등입니다.
이미 ASF 권역으로 고립화되어 있는 경기북부와 강원도의 경우 막대한 피해를 겪고 있습니다(관련 기사).
대한한돈협회 강원도협의회 배상건 회장은 "농식품부는 고립화로 인한 양돈농가에 발생하는 문제를 땜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풀어야 한다"라며 "고립화로 인한 대책을 논의할 전문가팀을 만들어 운영해야 하고 농식품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경기도협의회 최영길 회장은 "양돈농가들은 정부가 멧돼지를 관리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부는 멧돼지로 인한 전국 ASF 상시화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전국을 권역화하여 관리하기 전에 먼저 정부의 방역정책이 잘못되었음을 국민에게 인정하고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ASF는 전국 어디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로 ASF 방역 정책 실패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경기북부와 같이 모든 문제가 양돈농가의 책임으로 전가되어 피해는 고스란히 농가에만 돌아갈 것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농식품부의 이번 '전국 ASF 발생 대비 16개 구역 사전 권역화' 추진에 대해 대한한돈협회는 반대의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SF는 구제역과 달리 전염성이 낮은 질병으로 권역화는 비과학적인 조치이며, 전 세계적으로 ASF 발생국 가운데 권역화를 통해 방역관리 하는 사례가 없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농식품부가 부득이 권역화를 추진해야 한다면 16개 소권역 대신 경기북부·강원, 경기남부, 충청, 전라, 경상, 제주 등 5개 대권역으로 설정을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지난 28일 ASF 야생멧돼지가 경기도 가평에서 추가 확인되면서 ASF는 또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발생시군이 10개로 늘어난 것입니다.
전 세계 ASF 발생국과 비교해 보았을 때 국내 ASF는 야생멧돼지로 인해 빠르고 확산되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ASF 발생 후 1년 4개월이 경과했지만, 멈출 기미가 없습니다. 정부는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이는 명확한 방역정책 실패입니다. ASF는 분명 상재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전국 권역화에 대한 정부 방역정책을 대하는 한돈산업은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됩니다. 첫 번째 한돈산업은 공식적으로 정부의 방역정책 실패를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피해를 입은 소수의 양돈농가만이 거리에서 작은 피켓을 들었을 뿐 입니다. 두 번째는 전국 권역화에 대한 한돈산업의 독자적 의견이 없다는 것입니다.
농식품부가 ASF 방역라인을 권역화를 빌미로 양돈농가에 두면서 국내 양돈농가들은 ASF로부터 보호를 받기 보다는 ASF를 막아내야만 하는 최전방에 서 있습니다. ASF 발생에 대한 피해까지 양돈농가에게 묻는다면 이것은 비합리를 넘어 부도덕한 것입니다.
이근선 기자(pigpeople1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