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식량 시스템이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해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는 유엔의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단순히 가축 폐사를 넘어 사료 공급망 파괴와 가축 질병 확산, 그리고 농가 수익성 악화라는 연쇄 도미노가 인류의 단백질 공급원을 뿌리째 흔들고 있습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22일(현지 시간) 공동 보고서 '폭염과 농업(Extreme Heat and Agriculture)'을 통해, 극단적 폭염이 전 세계 농식품 시스템 종사자 12억 3,000만 명의 생계를 위협하고 식량 안보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료 효율(FCR)의 비극, "먹어도 살 안 찌는 가축"
보고서는 축산 경영의 핵심 지표인 사료 효율(경제적 생산성) 측면에서 폭염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고 분석했습니다. 가축은 고온 스트레스를 받으면 체온 조절을 위해 대사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하지만, 반대로 사료 섭취량은 급감하는 '생리적 불균형' 상태에 빠집니다.
이러한 불균형은 결국 사료요구율(FCR)의 악화로 이어집니다. 보고서는 특히 돼지와 같이 열 발산 능력이 떨어지는 가축의 경우, 사료 섭취 저하가 성축 기간 연장과 출하 체중 미달을 초래해 농가의 생산비를 가파르게 상승시킨다고 경고했습니다. "먹여도 살이 찌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농가 수익성에 치명타를 입히고 있는 것입니다.
고온 스트레스와 '면역 공백'… 질병 확산의 기폭제
면역 체계의 붕괴 또한 심각한 문제입니다. 고온 스트레스를 받은 가축은 장 내벽 세포가 손상되는 '장관 투과성 증가(Leaky Gut)' 현상을 겪으며, 평소라면 이겨냈을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됩니다.
특히 폭염 하에서는 백신의 항체 형성 능력이 저하되어 방역망에 '면역 공백'이 발생하며, 기온 상승으로 활동 범위가 넓어진 매개 곤충과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야생동물을 통해 악성 전염병이 확산될 위험이 더욱 커진다는 분석입니다.
수확량 급감과 '히트플레이션'의 공포
폭염은 가축이 먹는 사료 작물 자체의 수급도 흔들고 있습니다. 옥수수와 대두 등 주요 곡물이 열적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수확량이 급감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 곡물 가격의 즉각적인 상승을 부르고 있습니다.
생산비는 치솟는데 사료 효율은 떨어지는 '이중고'는 결국 축산물 소비자 가격을 견인하며, 식탁 물가 전체를 흔드는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이러한 가격 폭등이 전 지구적 영양 불균형을 심화시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축산 경영의 패러다임 전환 없이는 미래 없다"
FAO와 WMO는 농업 노동자의 온열 질환 사망률이 타 산업 대비 35배나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노동력 상실에 따른 관리 부실이 다시 질병 발생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경고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후 적응형 사료 작물 전환 △축사 내 정밀 환경 제어 시스템 도입 △국가별 조기 경보 시스템 강화 등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촉구했습니다.
이번 보고서는 폭염이 더 이상 계절적 변수가 아닌, 축산업을 비롯한 농업의 공급망과 경제적 구조를 뒤흔드는 '상시적 위기'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국내 양돈 현장 역시 기후 위기 시나리오에 맞춘 방역 및 사양 관리 체계의 전면적인 재점검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이근선 기자(pigpeople100@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