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기차 충전하는 마을, 공연이 있는 농촌

  • 등록 2025.07.17 22:57:23
크게보기

축산환경관리원 경영전략실장 한갑원(경제학 박사)

농촌은 더 이상 단순히 농사를 짓는 공간이 아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마을 소멸의 위기에 직면한 이곳에, 신재생에너지와 문화, 그리고 삶의 활력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 속에서 농촌은 이제 ‘에너지를 생산하고, 문화를 향유하며, 삶을 재설계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가축분뇨 발생량은 약 5,000만 톤에 달하며, 이 중 85% 이상이 재활용되고 있다. 예전에는 악취와 오염의 주범으로 여겨졌던 가축분뇨가 이제는 ‘돈이 되는 자원’, 나아가 농촌의 미래를 이끄는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정부가 시행 중인 ‘유기성 폐자원을 활용한 바이오가스의 생산 및 이용촉진법’(일명 바이오가스법)을 계기로, 가축분뇨를 활용한 바이오가스 생산과 에너지화가 본격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전국적으로 약 100개의 바이오가스 플랜트가 운영 중이며, 이들 시설 중 가축분뇨를 활용해 바이오가스를 생산하고, 이를 다시 전기와 열로 변환해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연간 수십만 톤의 가축분뇨가 에너지로 전환되며, 농촌은 청정에너지 생산의 거점으로 떠 오늘 수 있다.

 

이러한 바이오가스 플랜트는 단순한 가축분뇨 처리 시설을 넘어선다. 농가·시설에 전기 판매 수익을 안겨주고, 남는 열은 온실 재배나 농산물 건조에 활용되어 농촌 자원의 순환을 실현 할 수 있다. 동시에 지역 내 일자리 창출, 청년 농업인의 귀농 유도, 에너지 자립 마을 구현이라는 다층적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최근 일부 지자체는 주민이 출자해 마을이 직접 운영하는 ‘주민 참여형 플랜트’를 도입해 운영 수익을 주민과 공유하는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이는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혁신적 접근이다.

 

농촌에서는 바이오가스 외에도 태양광과 풍력 등 다양한 신재생에너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경작이 어려운 유휴지나 비닐하우스 지붕, 축사 상부 등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농가 소득을 보전하고, 마을 전체에 청정에너지를 공급하는 사례가 전국적으로 늘고 있다. 충청남도 서천군에서는 마을 공동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해 마을회관과 경로당의 전기요금을 감면하고 있고, 강원도 평창군에서는 풍력단지를 활용해 관광 자원과 연계한 수익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이처럼 농촌은 ‘에너지 생산지’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문화적 공간’으로도 변모하고 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카페에는 전기차 충전소와 태양광 쉼터가 함께 설치되어 있고, 마을회관은 공연장과 전시공간, 디지털 체험관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의 ‘리틀 포레스트’, 전남 구례군의 ‘에너지자립형 돌오마을’은 대표적인 사례로, 농촌을 찾은 방문객과 주민들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디지털 기기를 충전하고, 공연과 영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이러한 복합문화공간은 단순한 시설을 넘어, 농촌에 머물고 싶은 동기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가축분뇨의 고도화된 활용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에는 가축분뇨를 압축·건조하여 고체연료(Solid Refuse Fuel, SRF)로 가공하거나, 고온 열분해를 통해 ‘바이오차(biochar)’로 재탄생시키는 기술이 각광받고 있다. 고체연료는 지역 내 보일러나 산업용 열원으로 활용되어 화석연료를 대체하고 있으며, 바이오차는 토양 개량제 및 탄소 포집 수단으로 사용돼 농업 생산성과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한다. 정부는 이러한 신기술을 농가 단위까지 확대 보급하기 위해 기술지침 표준화, 인증제 도입, 보조금 연계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도에서는 ‘에너지-농업-물 넥서스’ 모델을 통해 태양광 펌프와 스마트 관개 시스템을 연계해 물 절약과 작물 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고, 에티오피아·케냐 등 아프리카 농촌에서는 하이브리드형 신재생에너지 시스템이 전력 자립을 가능케 하고 있다.

 

네덜란드·덴마크 등 유럽 선진국은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통해 가축분뇨를 에너지화하고, 에너지 협동조합을 통해 지역 내 수익을 공동체와 공유하는 방식으로 농촌의 지속 가능성을 실현하고 있다. 일본의 오이타현에서는 ‘지역 전력회사’와 ‘문화재생 프로젝트’가 결합된 농촌 리브랜딩 전략으로 도시민 유입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결국 농촌은 단순한 먹거리 생산지를 넘어, 에너지와 문화, 미래를 충전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과거에는 외면받던 가축분뇨가 돈이 되고, 신재생에너지가 마을을 살리며, 문화가 농촌의 일상과 산업을 연결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농촌의 카페에서 전기차를 충전하고, 공연장에서 지역 문화를 즐기며, 온실에서 친환경 에너지를 활용한 채소가 자라는 그 풍경은 이제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농촌은 더 이상 소멸의 위기에 내몰린 공간이 아니다. 농촌은 지금, 재생에너지와 문화, 그리고 공동체의 힘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삶터, 일터, 쉼터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농촌의 미래를 재 설계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의 순간에 서 있다.

관리자 pigpeople100@gmail.com
Copyright @2016 돼지와 사람 Corp. All rights reserved.

PC버전으로 보기

돼지와 사람 I 031-988-1184 I 신문사업등록번호: 경기아51445 I 등록연월일: 2016년 12월 9일 I 제호: 돼지와사람 I 사업자등록번호: 136-12-63379 I 직업정보제공사업 신고번호 : 중부부천 제 2017-1호 I 발행인: 이득흔 | 편집인: 이근선 I 발행소: 경기도 김포시 김포한강2로 192, 302-901| 청소년보호책임자: 이근선| 대표메일: pigpeople100@gmail.com I 돼지와사람은 인터넷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 Copyright @2017 돼지와 사람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