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좋은 생각, 함께 발전합시다.”
충남 홍성에 자리한 '(주)돼지와건강' 사무실 한편에 걸려 있는 글귀입니다. 김경진 대표의 생각을 담은 이 짧은 문장은 어쩌면 지난 20년간 돼지와건강이 걸어온 길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난 3일 돼지와건강이 창립 20주년을 맞았습니다.
2006년 일단의 돼지 전문 수의사가 모인 '양돈컨설팅그룹'으로 출발한 돼지와건강은 지금은 컨설팅뿐만 아니라 두 곳의 양돈장(어울림팜, 해우리팜)을 직접 경영하고 동물약품(PNH 동물병원)도 공급합니다. 김경진 대표는 이 가운데 회사와 농장의 전체 경영을 맡고 있습니다(관련 기사).
해외와 달리 국내 양돈산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지니스 형태입니다.
더 독특한 것은 이들이 추구하는 목표입니다. 많은 농장이 더 높은 생산성적, 이른바 '1등 농장'을 목표로 달려갈 때 돼지와건강은 조금 다른 목표를 이야기합니다.
'망하지 않는 농장'입니다.
컨설팅 수의사들이 직접 돼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돼지와건강의 시작은 컨설팅이었습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2006년 8월 3일 사업자등록을 하고 처음에는 컨설팅에만 집중했습니다. 이후 2010년 첫 농장을 시작했고 2014년 동물약품 유통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2017년에는 두 번째 농장까지 만들었습니다.
컨설팅 수의사들이 직접 농장을 경영하겠다고 나섰을 때 주변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습니다.
김 대표는 첫 농장을 만들 당시 주변에서 "수의사들이 농장을 해서 되겠느냐", "언제 망하나 보자"는 식의 이야기도 적지 않게 들었다고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농장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확장됐습니다.
김 대표는 이를 지난 20년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았습니다.
“우리만의 방식으로 양돈장을 만들었고, 그게 잘 운영돼 여기까지 망하지 않고 왔다는 게 가장 큰 것 같습니다. 그게 또 확장되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농장을 소유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책임과 권한을 어떻게 나누고 경영자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까지 자신들만의 방식을 만들어왔다는 설명입니다.
“누군가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하는 농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돼지와건강의 농장 경영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은 '망하지 않는 농장'입니다(관련 기사).
김 대표 역시 한때 누구보다 생산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젊은 시절 직접 농장에서 근무했을 당시 자신이 관리하던 농장의 성적이 전국 상위 5% 안에서도 높은 수준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문제는 그 성적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성적을 그렇게 만들려면 누군가는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합니다.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김 대표 자신도 20대 당시 두 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출근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함께 일하던 직원들도 힘들었습니다. 좋은 성적과 그에 따른 성과가 있었기에 버텼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답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지속가능하지 않더라고요. 누군가는 희생해야 합니다. 만약 내가 평생 해야 하는 업이라면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생산성이 좋아서 돈을 벌 수도 있고 생산비가 낮아서 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꼭 MSY 1등이 수익성 1등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돼지와건강이 직접 운영하는 농장의 목표는 생산성적표 가장 위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질병과 폐사를 줄이고 경상비용을 낮춰 불황이 길어져도 견딜 수 있는 농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특히 김 대표는 자돈·비육구간의 폐사가 농장 수익성을 크게 흔드는 요인이라고 봅니다.
비용은 낮추되, 사람에게 쓰는 돈은 아끼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비용을 낮춘다'면서도 인건비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인건비를 아끼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농장에 따라 사람이 더 필요하면 인원을 늘리고, 능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그에 맞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시설과 자동화 장비를 갖추더라도 돼지는 결국 사람이 관리하는 생명체라는 게 김 대표의 생각입니다.
최고의 생산성적을 만들기 위해 사람을 계속 몰아붙이는 대신 농장도 살아남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도 오래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돼지와건강 사무실에 걸려 있는 '함께 발전합시다'라는 말이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는 이유입니다.
수의사 6명…컨설팅부터 농장경영까지 역할도 나눴다
현재 돼지와건강에는 6명의 수의사가 있습니다. 3명은 회사의 본업인 양돈 컨설팅을 담당합니다. 2명은 직접 운영하는 농장에서 관리와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김경진 대표는 현장 컨설팅보다는 회사와 농장의 경영을 맡는 쪽으로 역할을 옮겼습니다.
농장 경영방식 역시 독특합니다.
돼지와건강이 운영하는 두 농장에는 모두 합쳐 40명이 넘는 투자자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 대표가 강조하는 것은 투자자가 많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미국 파이프스톤(Pipestone)의 경영방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투자와 경영을 분리하고, 책임경영을 할 수 있는 '경영체'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대표이사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을 주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결정은 이사와 감사 등이 함께 판단하도록 하고 회계 역시 여러 단계에서 교차 확인하도록 했습니다.
경영진의 보수체계도 일반적인 방식과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낮추고 농장에서 실제 수익이 발생해야 성과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결국 경영하는 사람의 이익과 투자자의 이익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도록 만든 것입니다.
현재 두 농장은 투자자들이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수익을 내고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입니다.
사람을 키우는 데 4년…십수 년째 이어진 또 하나의 투자
돼지와건강의 또 다른 특징은 양돈 전문가를 직접 길러내는 일입니다.
회사는 창업 초기부터 인턴십을 운영해 왔고 지금은 이를 보다 체계적인 교육과정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현재 구상은 인턴 1년과 레지던트 3년, 총 4년입니다.
인턴 기간에는 농장의 모든 생산 파트를 경험하고 이후 3년 동안 컨설팅과 동물약품 유통 등으로 경험의 폭을 넓힙니다. 김 대표는 그동안 여러 수의사를 교육해 본 결과 적어도 3년 정도는 훈련해야 혼자 판단하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수의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매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당장 회사의 수익으로 연결되는 사업은 아닙니다. 돈도 들고 에너지도 많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가 컨설팅을 바라보는 생각도 같은 맥락입니다.
“컨설팅은 계속 배우는 직업입니다. 아는 것을 푸는 직업이 아니라 배우는 직업입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외부 교육과 세미나에도 적극적으로 보냅니다.
투자자도, 직원도, 산업도 함께 가야 한다
결국 돼지와건강의 독특한 사업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농장은 망하지 않고 지속돼야 합니다. 투자자는 적정한 수익을 가져가야 합니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최고의 성적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해서는 안 됩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젊은 수의사는 전문가로 성장할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사람이 다시 양돈산업의 자산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실제 돼지와건강은 회사의 농장 운영과 재무구조 등을 직원들에게 상당 부분 공개하고 있으며, 김 대표는 이러한 구조에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김 대표가 과거 한 발표에서 했던 말도 이러한 철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누군가는 벼농사 짓고, 누군가는 소 키우고, 누군가는 돼지를 키워야 합니다. 기왕에 그렇다면, 혐오산업이 아닌 사회가 인정하는 사업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돼지와건강이 말하는 '함께'에는 투자자와 임직원뿐만 아니라 양돈산업, 더 나아가 양돈업을 바라보는 사회까지 포함돼 있는 셈입니다.
“제가 없어도 이 구조가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20년을 맞았지만 돼지와건강은 별도의 거창한 기념행사를 열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함께한 고객농장 등에 20주년을 알리고 작은 기념품을 보내는 정도로 조용히 지나가기로 했습니다.
대신 김 대표의 관심은 다음 20년에 가 있습니다.
그는 돼지와건강을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사업구조라고 평가하면서 자신이 회사를 떠난 뒤에도 이 시스템이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있건 없건 간에 이게 유지되고 조금씩 계속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사업모델이 되고, 양돈 수의사로 일한다면 이런 구조 한두 개쯤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계속 유지되고 여기 구성원들이 만족감을 느끼는 구조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생산성적 1등보다 망하지 않는 농장, 회사의 성장만큼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직, 그리고 자신들이 쌓은 경험을 다음 세대의 양돈 전문가에게 다시 투자하는 회사.
20년 전 양돈컨설팅그룹으로 출발한 돼지와건강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조금 다른 길입니다.
“항상 좋은 생각, 함께 발전합시다.”
20년을 지나 다시 다음 20년으로 향하는 돼지와건강이 내건 이 오래된 문구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유입니다.
이득흔 기자(pigpeople100@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