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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제 나이도 있고”라는 말 뒤에 고령화 농촌에서 축산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들

한갑원 경제학박사

2018년 여름이었다.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부부가 경영하던 양돈농가에 컨설팅을 하러 간 적이 있다. 축사 안에서는 환기팬 소리가 계속 났다. 바깥은 더웠고, 안은 더 더웠다. 점검을 마치고 농장 밖 그늘에서 방역복을 벗자 땀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이런 날에도 부부는 돼지 한 마리 한 마리를 살피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농장주가 말했다.

“이제 나이도 있고 해서, 마을사람들과도 소통이 잘 안 됩니다. 사료값은 오르고, 법적 기준은 계속 강화되고요.”

 

그 말은 짧았지만 쉽게 잊히지 않았다. 축산을 계속할 수 있느냐는 질문 안에는 돼지를 잘 키울 수 있느냐만 들어 있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과 어떻게 지낼 것인지, 시설을 고칠 사람을 어디서 찾을 것인지, 바뀌는 기준을 누가 설명해 줄 것인지, 매달 나가는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축산농가를 찾을 때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악취 민원이 생기면 농가는 먼저 미안해진다. 그러나 시설을 고치고 관리 방식을 바꾸는 데에는 돈과 시간이 든다. 가축분뇨는 매일 발생하고, 정화시설은 날마다 관리해야 한다. 폭염에는 환기와 냉방에 들어가는 전력도 늘어난다. 농장주는 축사 안의 일을 보면서도 마을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농장 규모가 크고 작고를 떠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가축분뇨를 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이야기는 이때부터 다르게 들린다. 분뇨를 에너지로 바꾸자는 말만으로는 현장의 부담을 덜어 주지 못한다. 농가 입장에서는 저장조가 넘치지 않게 관리하고, 냄새가 나지 않게 살피고, 수질기준을 맞추는 일이 먼저다. 그 일을 제대로 해 낸 뒤에야 퇴비와 바이오가스, 전력과 열을 말할 수 있다. 가축분뇨 자원화는 좋은 그림을 그리는 사업이 아니라, 농가가 매일 마주하는 처리 부담을 줄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정화된 물도 마찬가지다. 가축분뇨를 처리한 뒤 나온 정화수는 외부 활용보다 방류에 의존해 온 경우가 많다. 정화수의 외부 활용은 수질기준과 안전성, 지역의 수요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활용 용도와 관리 기준을 뒷받침할 제도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을 걱정하고, 비가 오면 저장조를 걱정하는 농촌에서 정화수를 무조건 흘려보내는 방식이 최선인지 다시 물을 필요가 있다. 정화수의 안전한 재이용은 농가 한 곳의 선택만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기준과 책임을 분명히 하고, 처리시설과 활용처를 함께 관리하는 지역 단위의 체계가 있어야 한다.

 

농가 한 곳이 가축분뇨 처리와 정화수 관리, 에너지 회수까지 모두 떠안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여러 농가의 가축분뇨를 함께 처리하는 지역 여건에 맞는 시설을 더 넓혀 갈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 나온 바이오가스는 전력과 열로 돌려 쓰고, 정화수는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에너지저장장치를 연계하면 축사와 정화시설에 필요한 전력 일부를 지역에서 조달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전기 농기계와 친환경 운송수단까지 연결되면, 축산은 사료를 들여오고 축산물을 내보내는 산업을 넘어 물과 에너지를 다시 돌려 쓰는 산업으로 바뀔 수 있다.

 

여기에 작은 AI 분석 거점을 붙여 볼 수 있다. 거대한 데이터센터가 아니다. 공동자원화시설이나 축산단지 가까이에서 축사 온도와 습도, 악취 농도, 정화시설의 유입량과 수질, 바이오가스 발생량, 전력 사용량을 함께 보는 공간이다. 숫자가 평소와 다르면 농가와 관리자가 먼저 알 수 있다. 사람의 경험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나이 든 농장주가 혼자 놓치기 쉬운 신호를 옆에서 짚어 주는 기술이다.

 

그날 만난 부부 농장주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면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당장 사료값과 전기요금, 민원과 시설 보수가 더 급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기술은 농가의 일상을 덜어 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스마트 축산’이지만, 현장에서는 밤에 한 번 덜 뛰어나가도 되는 일, 기준이 바뀌었을 때 혼자 헤매지 않는 일, 주민에게 설명할 근거가 생기는 일이어야 한다.

 

농촌은 사람이 줄고 있다. 농장을 물려받을 사람도, 시설을 관리할 사람도 부족하다. 그렇다고 축산의 부담을 고령 농가의 어깨에만 남겨 둘 수는 없다. 가축분뇨 처리와 물 재이용, 에너지 회수, 데이터 관리가 지역의 공동 일이 되면 그곳에는 새로운 일이 생긴다. 설비를 운전하는 사람, 수질을 관리하는 사람, 데이터를 읽는 사람, 농가와 주민을 잇는 사람이 필요하다. 농촌에 사람이 남는 길은 거창한 구호보다,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늘리는 데서 시작될지 모른다.

 

그날 농장주가 한 말은 지금도 남아 있다. “이제 나이도 있고.” 그 말 뒤에는 축산을 계속하고 싶지만 혼자서는 버겁다는 뜻이 들어 있었다. 축산이 혼자 버티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농가가 혼자 감당하던 물과 에너지, 환경과 사람의 문제를 지역이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가축분뇨가 농장 밖으로 나가는 길이 부담의 끝이 아니라, 농촌에 다시 사람과 일이 돌아오는 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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