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전국의 돼지농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ASF의 확산 원인이 마침내 드러났습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역학조사 중간결과(관련 기사)에 따르면, 이번 무더기 발생의 유력한 발단은 지난해 당진발 바이러스(IGR-I, 55차)가 섞인 돼지 혈장단백질과 이를 원료로 쓴 배합사료였습니다. 농가가 차단방역을 소홀히 해서가 아니라, 매일 돼지들이 먹는 사료 공급망 자체가 바이러스에 오염되어 확산했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번 ASF 사태는 농가에만 방역 책임을 지우고 정작 거대한 돼지 부산물 유통망은 방치했던 정부의 안이한 방역 점검과 시스템 공백이 불러온 ‘구조적 참사’로 볼 수 있습니다.
정부의 방역 시계는 현장보다 한참 느렸습니다. 역학조사 결과, 지난해 11월 충남 당진에서 확진 판정이 나오기 전 이미 감염된 돼지가 도축장으로 출하되었고, 그 혈액이 사료 원료 제조업체로 흘러 들어가 전국 농가로 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이러스가 수개월 동안 사료망을 타고 전국 7개 시·도로 번지는 동안 방역당국은 완벽히 ‘깜깜이’ 상태였습니다. 기존의 상시 예찰 체계가 초기 감염과 잠복기 오염을 잡아내는 데 완전히 실패했음을 자인한 꼴입니다(관련 기사).
그동안 사료 원료의 바이러스 생존 리스크를 안일하게 평가해 온 대가도 혹독합니다. 정부는 바이러스 유전자가 검출된 혈장단백질에 대해 건조 후 3주간의 저장 공정을 거치지 않은 냉장 시료에서만 감염력이 확인되었다며 선을 그으려 합니다. 하지만 이는 현행 사료 제조·유통 공정이 과연 바이러스를 100% 사멸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정부의 과학적 검증이 부재했음을 스스로 증명할 뿐입니다.
이제라도 농장 중심의 낡은 방역 패러다임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합니다. 농가 입구에 소독약을 뿌리고 울타리를 높이는 식의 대책만으로는 도축장과 사료공장을 거쳐 흐르는 거대한 ‘수평 전파 고리’를 절대 끊어낼 수 없습니다.
우선 비발생 비위험 지역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부터 혁신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돼지를 무작위로 샘플링해 채혈하는 방식은 시간과 인력의 한계가 명확합니다. 올해 경험을 바탕으로 농장에서 나오는 폐사체(혀끝)와 환경시료를 수거해 PCR 검사를 진행하는 상시 예찰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래야 당진 사례처럼 감염 돼지가 도축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원천 차단할 수 있습니다.
뒤늦게 도입한 도축장 혈액탱크 전수검사는 임시방편에 그쳐서는 안 되며, 법제화를 통해 완벽한 상시 방역막으로 안착시켜야 합니다. 아울러 사료 원료용 혈장단백질의 바이러스 불활화 여부를 상시 점검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는 ASF뿐만 아니라 국내 양돈농가에 큰 피해를 주고 있는 PRRS나 PED 같은 고질적인 소모성 질병을 통제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방역으로는 미래가 없습니다. 정부는 추후 발표할 종합 대책('ASF 전 주기 방역관리 강화계획')에 보여주기식 처방 대신, 도축 부산물과 사료 유통망의 사각지대를 법적으로 메울 근본적인 대안을 담아야 할 것입니다. 국경검역 수준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합니다. 이번 ASF 사례에서 방역의 구멍은 농가가 아니라 정부의 안이함에 있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득흔 기자(pigpeople100@gmail.com)










































